지난해 말, 정부가 갑자기 동물 혈액 성분제제를 동물용의약품으로 관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우면서 일선 동물병원에 혈액 공급 부족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사실상 유일하게 전국 동물병원에 혈액을 공급하던 동물혈액은행은 물론, 지역 동물병원에 혈액공급을 시작했던 건국대 동물병원 헌혈센터도 혈액공급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죠.
이후 검역본부에서 ‘전혈을 제외한 동물혈액제제는 동물용의약품(생물학제제)에 해당한다’는 해석을 내놓으며 전혈 공급은 재개됐지만, 농축적혈구나 혈장제제 공급은 여전히 요원한 상황입니다.
일선 동물병원들은 단체대화방에서 혈액을 구하고 있으며, 동물복지를 고려해 없앴던 공혈견을 다시 키우기 시작한 동물병원도 생겼습니다.
동물 헌혈에 대한 부족한 인식과 소형견 위주의 국내 반려견 양육 문화를 고려할 때, 헌혈을 통해 수혈에 필요한 충분한 혈액을 충당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동물인공혈액을 개발 중인 업체가 있다고 해서 찾아가 봤습니다.
바로 지난해 창업한 레드진이 그 주인공인데요, 데일리벳에서 레드진 창업자인 박갑주 박사님을 만났습니다.
Q. 안녕하세요 대표님.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레드진의 창업자이자 대표이사로 연구개발 및 경영 총괄을 맡고 있는 박갑주입니다.
미국 브라운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25년 이상 미국 및 국내 제약 분야에서 신규 신약후보물질 발굴부터 비임상연구, 임상시험의 전반적인 R&D과정을 총괄한 경험이 있습니다. 미국 Pfizer Inc. 같은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견제약회사, 스타트업, 벤처 회사 등 여러 회사에서 경험을 쌓았습니다.
Q. 레드진 창업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창업이라는 목표는 오래전부터 갖고 있었습니다. 제 경험과 부합되면서 다가올 미래가 필요로 하는 게 무엇일지 고민 중이었죠.
유전자 교정 분야의 저명한 학자인 김진수 박사(전 서울대 교수)와 서울대 동기로 오랫동안 친분이 있는데요, 지난 수년 동안 혁신신약 개발과 바이오 기술에 대해 논의하면서 ‘고령화 시대와 메르스, 코로나19 같은 빈번한 팬데믹에 의해 헌혈량이 급감해 혈액 수요는 갈수록 늘어나지만, 공급은 이를 충족할 수가 없다’는 점에 서로 공감대가 형성됐습니다.
(편집자 주 : 혈액 수요는 증가하고 있지만, 국내 헌혈 환자는 2017년 292만 8670명, 2018년 288만 3270명, 2019년 279만 1092명, 2020년 261만 1401명으로 매년 감소 중입니다).
저와 김 박사는 국민건강 측면에서 심각한 상태임을 인지하고 의기투합해 최첨단 유전자교정기술과 줄기세포배양기술을 활용한 인간 및 반려동물의 수혈용 세포기반 배양 인공혈액을 개발하는 주식회사 레드진(RedGene Inc.)을 2022년 1월 24일 창업했습니다(http://www.red-gene.com).
Q. 사람인공혈액 개발을 하다가 동물인공혈액 개발까지 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시작은 모든 사람에게 안전하게 공통으로 수혈할 수 있는 세포기반 인공혈액을 개발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그러던 중 반려동물의 수혈을 위한 공혈동물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공혈동물의 사육환경이나 관련 제도가 너무나 열악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현재 반려동물 증가 추세에 따라 반려동물 헬스케어 분야가 급격하게 발전하고 있으며, 특히 동물의 평균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인간과 마찬가지로 수혈이 필요한 질병의 발병빈도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동물혈액제제에 대한 기준이 없어 현장에서 큰 혼란이 발생했으며, 소형견 위주의 양육문화로 헌혈을 통한 충분한 혈액공급도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이러한 반려동물의 심각한 혈액 공급 부족을 해결하고 그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반려동물(개, 고양이)의 배양 인공혈액 개발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Q. 인공혈액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인공혈액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개발할 수 있는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인공혈액 개발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종동물의 적혈구를 추출하여 가공한 헤모글로빈 합성 혈액이 있고, 과불화 탄소를 합성한 케미컬 합성 인공혈액이 있습니다. 그리고 세포기반 배양 적혈구가 있죠. 앞의 두 가지 합성 인공혈액은 임상시험 도중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해 현재는 개발이 중지되었고, 많은 사람이 세포기반 인공혈액에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세포기반 인공혈액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인공혈액 세포주가 필요합니다. 현재는 배아 줄기세포, 역분화 줄기세포, 조혈줄기세포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줄기세포를 이용해 인공혈액을 재생할 경우에는 줄기세포를 중배엽으로 분화를 유도하고 유도된 세포를 다시 적혈구 전구세포로 분화를 유도한 뒤, 마지막으로 적혈구로 분화 유도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하지만 조혈줄기세포를 이용할 때는 중배엽으로 유도하는 과정이 없기 때문에 배양 기간이 짧습니다. 그런데, 조혈줄기세포는 배아줄기세포나 역분화줄기세포에 비해 세포 증식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불멸화 세포주를 만들어 사용합니다. 또한, 혈액형의 구분이 없이 만능으로 수혈 가능한 인공혈액을 만들기 위해서도 유전자 가위를 활용합니다.
Q. 사람인공혈액과 개, 고양이 인공혈액 개발에 차이가 있을 것 같은데…
사람과 개, 고양이는 혈액형, 적혈구 크기, 적혈구 모양이 다 다릅니다. 따라서, 각각의 증식 및 분화에 필요한 배양조건이 다르죠.
사람은 기술성숙도가 4 이상으로 많은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개와 고양이의 세포기반 인공혈액 관련 연구는 아직 1건도 보고되지 않았습니다. 레드진에서 개와 고양이의 인공혈액을 개발한다면 세계 최초가 되는 것입니다.
현재, 개와 고양이 말초 혈액으로부터 조혈줄기세포를 추출하여 증식하는 데까지 완전한 프로토콜을 만들었고, 개의 경우에는 조만간 좋은 결과를 소개해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처음 길을 개척하는 마음으로 그동안의 노하우를 담아 가장 효과적인 반려동물 혈액 생산 방법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Q. 말씀하신 것처럼 세포기반 동물인공혈액이 상용화된다면 세계 최초의 사례일 텐데요, 언제까지 상용화하는 것이 목표인가요?
현재 사람과 반려동물의 줄기세포기반 배양 인공혈액은 둘 다 아직 상용화된 적이 없습니다.
한국에서 인간 대상으로 인공혈액 실험을 진행한 기록은 없으나 영국에서는 2022년 11월 말부터 줄기세포기반 실험실 배양 인공적혈구를 세계 최초로 2명의 정상인간에게 연구자 임상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2023년 6월에 정부 다부처 임상용 인공혈액 개발 R&D 과제(2023~2027년) 모집이 시작될 예정입니다.
인공혈액 상용화에는 여러 가지 장애물이 있습니다. 규제와 대량생산 시설 구축 및 그에 따른 인력충원, 경제성 확보 등입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인공혈액의 동물시험 및 임상시험에 대한 데이터가 많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따라서 추후 상용화를 위한 동물시험/임상시험과 규제업무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며, 대량생산 시설확보와 그에 맞는 인력을 충원하는 부분도 상용화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을 위한 수혈용 인공혈액 개발 및 대량생산은 10년 이상 소요될 것으로 추정되며, 반려동물의 경우, 신속하게 진행된다면 5년 이내에(2027년) 배양 인공 적혈구 승인 및 시판이 가능합니다. 충분한 자금확보와 연구인력이 충원된다면, 2026년 이전에 반려동물 수혈용 배양 인공 적혈구 판매 승인을 진행할 수 있다고 봅니다.
Q. 설명을 들어보니, 인공혈액 개발은 단순히 한 업체에서 사회적 책임감을 가지고 개발할 수준의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동물복지는 물론 사람의 건강과 복지에도 기여하는 바가 큰 만큼 정부나 학계의 관심과 지원도 필요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한국은 올해부터 다부처 국가과제로 인공혈액 개발 사업 1차를 5년 동안 진행할 예정입니다. 총 3차에 걸쳐 15년 동안 부족한 혈액을 대체할 방법을 모색하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국방부 산하 방위사업청에서도 형질전환 동물을 통한 인간수혈용 혈액 개발 사업을 진행 중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아직 반려동물용 인공혈액 개발에 대해서는 괄목할 만한 연구나 국가적 사업은 없습니다. 레드진에서 작년부터 농림축산검역본부, 축산과학원과 관련 미팅을 진행하고 있는데, 다행히 반려동물용 인공혈액 개발에 대해 뜻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내년쯤에는 좋은 소식이 있을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Q. 마지막 질문입니다. 앞으로의 계획과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수의학의 발전에 따른 예방의료의 확대와 양육환경의 개선으로 반려동물의 평균수명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10~20년 전만 하더라도 반려동물의 평균수명이 10년이었고, 15년이면 장수한 것으로 여겨졌지만 최근에는 평균수명이 15년, 희망 수명은 20년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평균수명 증가는 노령 반려동물의 증가로 이어져 반려동물 헬스케어의 중요성도 강조되고 있습니다. 반려동물은 사람보다 수명이 짧지만, 인간과 유사한 노화 과정 및 질환을 겪기 때문입니다. 노령 반려동물이 늘어날수록 암 발병률이 높아지고, 수술에 필요한 수혈용 혈액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앞서 인공혈액 상용화의 장애물을 소개해드렸는데요, 현재 가장 큰 허들은 모든 바이오 제약 분야가 그렇듯이 기술개발과 상용화에 필요한 자금확보입니다.
레드진은 자금확보를 통해 핵심연구원 채용과 기기장비 및 GMP공장 확보, 관련 기관/업체들과 효율적인 협업을 통해 인공혈액 상용화가 신속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여 수혈이 필요한 수많은 환자와 동물의 생명을 구하고자 합니다.
반려동물 배양 인공혈액을 통해, 고통받는 공혈견이 사라지고 반려동물이 안정적으로 치료받을 수 있는 의료체계가 하루빨리 정착될 수 있도록 수의학계와 국민들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출처: https://www.dailyvet.co.kr/news/industry/186944